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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일원장의 족보칼럼] 일본서 나온 민족(民族)이란 낱말

보건복지타임스 2008. 2. 2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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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일원장의 족보칼럼] 일본서 나온 민족(民族)이란 낱말
홍재희 기자 (기사입력: 2008/02/21 12:01)

해방이 된지가 벌써 한 갑자가 지났건만 짙게 깔린 왜색을 생각하며 아시에 민족(民族)이란 낱말을 들먹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우리에게 친숙(親熟)한 이 낱말을 꺼내는 것은 이 민족(民族)이라는 낱말이 일본에서 건너와 이 땅에 자리 잡힌 낱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남북으로 갈린 우리에게는 이 민족(民族)이라는 낱말이 한사코 드러낼만한 짙게 깔린 사연이이에 그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넋을 찾으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민족(民族)이라는 낱말이 일본서 건너온 낱말일 것인가? 일본서 나온 낱말이란다면 우리 조상들이 쓰지 않았을 것이요, 그렇다면 옛책에 이 낱말이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부터 시작하면, 적어도 일본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인간(印刊)되거나 쓰여진 책에서는 민족(民族)이란 낱말이 들어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내면 그 뜻과 쓰임새를 알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 우리가 소지(所知;認識)하고 있는 민족(民族)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견주어보고 선후의 맥락을 짚어보는 것이다.

다음은 우리의 소중한 문헌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들여다보았다. 애석하지만 고종과 순종실록은 일제강점기에 편찬돼나서 이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철종실록까지로 한정하다보니 태조에서 철종 때까지 등장하는 民族이란 낱말은 딱 한번 보인다.

* 성종실록(成宗實錄 ; 성종 이십년 이월 열아흐레 날 )

且古者兆域有常處, 令國民族葬

~ 또 옛날에 묏자리는 일정한 곳이 있어서 나라사람들에게는 족장[가족장]으로 하고 ~

여기서 ‘민족’이란 연결된 글자가 나오는데 한문의 구조상 ‘령국민’과 ‘족장’이 붙어있을 뿐으로 민족(民族)이란 말과는 전혀 다르다. 즉 민족(民族)이라는 낱말에 해당되지 않아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민족(民族)이란 낱말이 들어있지를 않는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형태의 글귀는 다산 정약용의 문집에서도 여러 번 등장한다. 쉽게 이해되지를 않고 의심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이보다 또 다른 뜻으로 쓰인 글귀가 있어서 우리를 혼동케 한다. 영조시대에 살면서 글을 남긴 강재항(호;立齋)의 문집에는 민족(民族)이란 낱말을 소상하게 밝혀 놓았다. 그 대목을 살펴보면

* 입제선생유고(立齋先生遺稿)

~ 古者民族有四。士農工商而已矣 ; 예로 민족은 넷이 있으니 사·농·공·상이요

이렇듯 여기서는 민족(民族)의 뜻을 사·농·공·상의 부류라는 말로 명확히 밝혀놓았다. 즉 우리가 소지(所知;認識)하고 있는 뜻의 한 종족(宗族, 種族) 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어떠한 한 층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쓴 민족(民族)이란 낱말의 뜻과 쓰임새는 사뭇 다르다 못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우리가 알고있는민족(民族)이란 낱말은 일제에 의해 전해진 말이다. 일제강점기로 인해서 낱말들의 뜻과 쓰임새가 달라지다보니 조상들의 맥락과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일본은서구(西歐)의 문물을 일찌감치 접하게 되어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로는 모든 국가의 운영체계를 기존의 틀을 벗어나 서양과학문명을 받아들이는데 정신이 없었고, 서구의 식민정책을 모방한 군국체제로 굳혀갔다. 그러는 과정에서 거기에 합당한 말들을 만들어내고 점령지역에 퍼뜨려 소위 제국의 언어로 반세기를 물들여 왔다. 그 중에 민족(民族)이라는 낱말도 들어있는 것이다.

‘race’ 또는 ‘nation’을 떠올리는 글자로 ‘民’자와 ‘族’자를 합성하여 퍼뜨린 것이다. ‘民’자대신에 ‘人’자도 쓸법하다. 이러할지나 우리는 일본보다 손을 대지 못하고 시기를 놓쳐버려 일본에 의한 신조어(新造語)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사용하고 흉내 내기에도 바쁜 처지가 되었다. 비단 민족이란 낱말뿐만이 아닌 세상에 새로 쓰이는 모든 말들을 자신들의 정서에 맞춰 정립해 나갔던 말들이 동아시아에 물들게 되었다. 그런 낱말들이 저들의 뜻대로 장만되어 가던 시절에 우리는 일본에 의한 개화기 시절을 맞았고 을사년에는 아예 조선땅을 들어 일본에게 바치게 되는 시점부터는 신조어가 알게 모르게 우리 몸에 배어버렸다.

이제 일본이 발을 들여놓은 지 한 세기가 지나자 이러한 왜색의 형태를 까마득히 모를 수밖에 없는 세태로 굳어졌다. 지금껏 우리는 이를 따라하는 데만 여념이 없었고 대물림에 대물림으로 굳혀져 우리의 피와 살이 되어버렸다. 비록 민족이라는 낱말 뿐 만이 아니어서 상당수의 낱말이 그렇거니와 적이나 큰 걱정은 그런 낱말에 따른 사고방식(思考方式, (역시 일본식 말이어서 마땅한 말을 못 찾은 순간 떨림.)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형태로 자리 잡혀 온갖 것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 있다. 우리의 얼과 넋이 다 빠져버린 느낌이다. 남북이 통일되어야하는 이 시대의 최대의 과제가 주어진 이 마당에 우리 몸에 배인 왜색은 어찌 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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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족보 오재일 원장]

▶ 1989년 안의 김씨 족보 편찬
▶ 1992년 경주 손씨 언양공파보 편찬
▶ 1995년 한국 인물 정보 연구소 부소장
▶ 2002년 연안이씨 진사공파보 편찬
▶ 2006년 한국고서연구회 이사
▶ 2007년 조선왕조실록 오류 수정 작업- 번역본 오류신고 400건 이상, 원문수정 2000건 에 3000자 이상신고 (최다 오류신고자로 선정)
▶ 현재까지 논문 3편 외, 칼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