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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데일리뉴스 - [오재일원장의 족보칼럼] 이름자 이야기

보건복지타임스 2007. 11. 1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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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일원장의 족보칼럼] 이름자 이야기
홍재희 기자 (기사입력: 2007/11/12 12:24)

내 것이면서도 남이 주로 많이 쓰는 것을 들자면 아마도 이름자일 것이다. 이는 이름자가 바로 인간세계가 사회성을 띄고 있다는 증거로 남이 많이 쓰면 쓸수록 그 사람은 유명한 사람이 되고, 주가로 친다면 높은 값의 주가 되는 이치다. 그러나 유명이라는 저편에는 악명도 있다.

망한 집구석이거나 세상 사람들의 저주받는 이름말이다. 이름자 하나로도 인간의 영욕이나 흥망성쇠의 발자취도 가늠해볼 만하다. 한세상을 살다간 뒤로 남는 것은 이름뿐이요 짐승은 가죽만을 남기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 이름자에는 주로 세 음절의 이름이 많았으리라고 생각되나 그 것을 적어둘만한 글자가 없어서 알아볼 수가 없다. 다만 이두식으로 적어둔 것에서 세 음절의 이름을 엿볼 수가 있는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뒤로는 두 음절이나 한 음절로 낙착돼버렸다.

옛날에는 아이들에게는 정식 이름이 없었다. 태어나면 지체 있는 집이나 누구나를 막론하고 임시방편으로 아무렇게나 이름을 불렀다. 더군다나 먹고 자라는 여건이 열악하므로 어려서 죽는 일이 많던 때라 천한 이름으로 불렀다. 그것은 길가의 잡초처럼 밟히고 천해야 명이 길어진다는 생각에서인데, 즉 천한 것에는 마(魔)도 눈길을 두지 않아서 병마(病魔)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질게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에 딸려 보내는 것이다.

그러한 이름들을 보면 첫째가 똥이었다. 갯똥이[介叱同], 쇳똥이[牛叱同], 말똥이[馬叱同], 똥녜(분녜)[糞禮], 분이(糞伊) 등, 세상에 귀하게 된 정승들도 어릴 적의 이름은 다 이런 식이었다. 다음은 길가의 돌로, 돌쇠[乭金], 개돌[介乭], 쇠돌[牛乭] 등이다. 여기에 다리(교)[橋]도 한몫을 했다. 돌다리, 널다리라는 이름을 많이 썼는데, 실제로 ‘석달’이나, ‘판달’이라고 하지는 않았고 교(橋)자 대신에 동(童)자를 써서 석동이나 판동이라고 썼던 것이다.

그 외에 돼지, 바우, 쇠야치, 거북, 잰내비, 곰보, 쌍가매, 깐득이, 무쇠, 먹쇠, 마당쇠, 업둥이, 칠복이, 곰녜, 굇녜, 길녜, 뱃녜 등을 들어볼 수가 있다. 이렇게 모질거나 천한 이름으로 자라다가 성인이 되면 지체가 있는 집안에서는 관례(冠禮)를 치른다. 즉 몸집도 커지고 수염도 나며 목소리도 어른 목소리가 난뒤 스무 살 쯤이 되면, 혼례에 앞서서 상투를 틀고 갓을 쓰는 성인식을 행하는데, 이것을 관례라고 한다. 이때부터는 정식으로 사람대접을 받게 되고 어른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관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은 어렸을 적에 얻은 천한 이름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어서 이름은 반상(班常)의 구별이 되는 잣대가 되었고, 잘 아는 사이에도 관례를 안 치룬 사람에게는 말을 놓을 수 있을 만큼 관례는 중요한 일이었다.

관혼상제의 첫 번째인 이 관례가 치러질 때 이름을 하나 받게 되는 데, 그것을 자(字)라고 한다. 이것은 부르는 이름이 아니고 집안 어른이나 동무들이 가볍게 부르는 이름으로 아랫사람이 부르거나 함부로 쓰면 큰 실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식이름을 따로 두어, 관례 때를 전후로 호적이나 족보에 올리는데, 바로 항렬자 이름이다. 이런 풍습은 천년을 이어져 왔으나, 단발령으로 상투를 틀 일이 없어지게 되면서부터 관례는 자연히 없어졌고, 정식이름을 바로 호적에 올리는 법이 서게 되었다. 이렇게 관례법이 없어져 버리자 장가들 때를 기다려 자(字)를 붙여주기도 하였다. 간혹 장가를 가야 자(字)를 얻는다고 하는 소리를 하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관례와 혼례가 엄연히 다른 것이었고, 따라서 관례 때가 아닌 혼례 때에 자(字)를 얻는다는 말은 틀린 이야기다.

아무튼 한사람에게 붙는 이름은 어렸을 적의 천한 아명과, 관례를 치르고 얻게 되는 자(字)와, 호적이나 족보 등 공식문서에 오르는 정식이름 까지 셋이나 되는데 문사들 중에는 호(號)를 썼으니 넷이나 되는 셈이다. 여자이름의 경우에는, 이름이 있더라도 거의가 아명인데 시집간 뒤로는 댁호(宅號)나 마님으로 부르게 되어 이름으로 부를 일이 없는 까닭에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더라도 아예 모르고 지낸다.

지금도 나이가 많은 어른한테 어머니 이름을 물어보면 모르거나 당황하여 시치미를 떼곤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 ‘옛날에는 여자는 이름도 없었다’고 우겨대는 사람도 많다. 어려부터 이름이 없었다면 어떻게 불렀단 말인가! 아무튼 댁호(宅號)도 해방 이후로는 차츰 없어지면서 돼지엄마 하는 식으로 바뀌다가 지금은 영자씨, 순희씨 하든가 더 나아가 미쎄쓰김 하는 식이다.

여인네가 당호(堂號)를 거는 일은 시문이 잡혀있는 집안에서나 해오던 일이라서, 청사에 남은 당호 중에는 이번에 오만 원 권 지폐에 들어간다는 사임당 신씨라든가 난설헌 허씨 등이 꼽힌다. 이 외에도 불가의 오묘한 이치를 담은 법명, 천주교의 영세명이라든가 기독교의 세례명, 기생이 되면 기적(妓籍)에 오르는 기명(妓名)이 있는데, 황진이[黃眞] 기명은 명월(明月)이요 춘향 모 월매(月梅)도 기명이다. 뭇 사내들의 입맛을 돋우는 듯한 글자들로 채워진 이 기명은 엇비슷한 이름들도 많고 인간 속세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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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족보 오재일 원장]
▶ 1989년 안의 김씨 족보 편찬
▶ 1992년 경주 손씨 언양공파보 편찬
▶ 1995년 한국 인물 정보 연구소 부소장
▶ 2002년 연안이씨 진사공파보 편찬
▶ 2006년 한국고서연구회 이사
▶ 2007년 조선왕조실록 오류 수정 작업- 번역본 오류신고 400건 이상, 원문수정 2000건 에 3000자 이상신고 (최다 오류신고자로 선정)
▶ 현재까지 논문 3편 외, 칼럼 게재